인천의 역사

인천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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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유래 및 인천 근현대사 연표

인천의 최초 명칭은 미추홀(彌鄒忽)이다. 이 지역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475)로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한자식으로 바뀌어 소성현(召城縣)이 되었다.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 어머니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때에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는데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다시 경원부로 환원되었다.

그것은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왕실과 관련이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다시 인주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 명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다.

본 저작물은 '인천광역시청'에서 '2014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인천의 유래와 연혁(작성자:문화재과)'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인천광역시청, http://www.incheon.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2018
    07.01남구의 명칭 미추홀구로 변경
  • 2016
    07.30인천지하철 2호선 개통
  • 2015
    04.23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
  • 2014
    09.19제17회 아시안게임 개최
  • 2012
    06.30수인선 개통(오이도-송도)
  • 2009
    10.18인천대교 개통
  • 2007
    04.17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03.23인천공항철도 개통
  • 2005
    08.31제16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 2003
    08.05송도, 영종, 청라 경제자유구역 지정
  • 2001
    03.29인천국제공항 개항
  • 1999
    10.06인천지하철 1호선 개통
  • 1995
    01.01인천광역시 승격
  • 1992
    09.02새얼문화재단, 우현 고유섭 선생 동상 제막
  • 1989
    07.12월미도 문화의 거리 개장
    01.01영종, 용유, 계양면 인천직할시 편입
  • 1988
    12.화도진 복원(화도진 공원)
  • 1984
    09.15인천상륙작전기념관 준공
  • 1983
    07.01개항 100주년 기념식 거행
  • 1982
    07.17프로야구 인천경기 개막
  • 1981
    07.01인천직할시 승격
  • 1979
    01.01인천공과대학(인천시립대 전신) 설립 인가
  • 1974
    08.15경인선 전철 개통
  • 1973
    09.30인천시사(상, 중, 하 3권) 간행
  • 1970
    02.03중학교 무시험 추첨 시행
  • 1969
    12.08인천은행(경기은행 전신) 개점
  • 1968
    12.21경인고속도로 개통
  • 1966
    08.14경인간 직행버스 개통
    05.18인천시립교향악단 발족
  • 1965
    12.17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발굴
  • 1964
    10.14장창선 선수, 인천출신 최초로 올림픽메달 획득(은메달)
  • 1963
    06.24송도유원지 개장
  • 1962
    08.15새나라자동차회사, 국산 택시 생산 개시(청천동)
  • 1961
    05.16군사쿠테타
  • 1960
    04.194.19 혁명
  • 1959
    07.01경인선 제물포역 신설
  • 1957
    11.30주안 고인돌 발견
  • 1955
    12.23인천시민의 노래 제정
    03.01제1회 인천시문화상 시상
  • 1954
    04.24인하공과대학 개교
    04.08한미문화원(인천문화원 전신) 발족
  • 1950
    09.15유엔군 인천 상륙
    06.25한국전쟁 발발
  • 1949
    08.15인천부, 인천시로 개칭
  • 1946
    12.13인천 최초의 우리말 전화번호부 발간
    09.21인천건설영화사, 영화 ‘무영의 악마’를 표관에서 상영
    04.01인천시립박물관 개관
  • 1945
    10.07인천 최초의 우리말 신문‘대중일보’창간
    08.15광복
  • 1941
    01.14은영회(사진예술단체) 창립
  • 1937
    08.06수인선(인천-수원)
  • 1934
    06.30인천공설운동장 준공(도원동)
  • 1933
    10.‘인천부사’ 간행
  • 1932
    02.15강도지(江都誌) 상, 하권 간행(인천 이림상회)
  • 1927
    문학리에서 고인돌
  • 1924
    05.09한국인 경영 활동사진 상영관 ‘애관’. 외리에 개관
  • 1919
    03.06인천공립보통학교,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만세 운동
  • 1918
    10.27인천항 도크
  • 1917
    02.26조선인촌제조주식회사(성냥 제조) 설립
  • 1912
    05.11기관차(모가형) 최초로 조립
  • 1907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 축조(주안)
  • 1906
    08.07월미도 교량 준공
  • 1905
    제임스 존스턴 별장(인천각) 건축
  • 1904
    02.09러시아, 일본 인천 앞바다에서 개전
  • 1902
    12.22제1차 하와이 이민 인천항 출항
    06.01인천부 부내(府內) 전화 개통
  • 1899
    12.29영미연초공장
    09.18경인선(인천-노량진) 개통
  • 1897
    03.22경인선 철도 기공식 거행(우각리)
  • 1896
    11.04답동성당 축성식 거행
  • 1895
    06.27관립 한성외국어학원 인천지교(인천고 전신)
  • 1893
    03.12인천영화보통학교 창립
    02.‘타운센트’ 정미소 설립
    01.근대해운업 효시 이운사(기선회사) 창설

인천의 지명 변천

시대 인천 부평 강화
삼국시대 백제 미추홀 - 갑비고차
고구려 매추홀 주부토 혈구군
통일신라 (676~935) 소성현 장제군 해구군
고려 (918~1392)
  • 경원군
  • 인주
  • 경원부
  • 수주
  • 안남도호부
  • 계양도호부
  • 길주
  • 부평
  • 강화현
  • 강화군
조선 (1392~1910)
  • 인주
  • 인천군
  • 인천도호부
  • 부평군
  • 부평도호부
  • 강화도
  • 호부강도
  • 강화군
근대 (1895~1945) 인천부
  • 부평군
  • 부천군으로 통합
  • 강화군
  • 강화부
현대 (1945~현재)
  • 인천시
  • 인천직할시
  • 인천광역시
1995년
인천광역시 편입

인천과 개항 · 개항 이후 인천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인천은 부산, 원산의 뒤를 이어 1883년에 세 번째로 개항되었다. 개항 후 인천에는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생활하였고, 이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화 과정을 체험하는 도시가 되었다.

제물포 개항은 인천지역사회에 또 다른 시련을 가져왔다. 외세의 진입과 이질적 문물의 유입에 따른 갈등에서도 그러하였지만, 그 보다는 일본이 원인천을 한국식민지 경영의 발판으로 삼은 데 있었다. 청·일전쟁(1894~1895)과 노·일전쟁(1904~1905)을 치르면서 한국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일본은 우선 제물포와 한성(漢城)을 잇는 도로와 철도를 부설하고(1899) 이들과 연계되는 항만의 확장·수축에 착수하였다(1906). 그리고 이어 일본의 식량(쌀)과 공업원료(주로 목면)를 확보하기 위한 토지조사사업(1910~1918)과 산미증식계획(1920년대), 수리조합 설립(부평수리조합: 1923) 등을 추진하였다.

인천지역사회는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앞서 많은 토지와 인력을 수탈당하고 대부분의 농민이 몰락하였다. 그리고 몰락한 농민은 저임금의 노동자와 가계보조적 노동인구(부녀자·아동들)를 증대시켜 조선인의 노동 여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인천지역사회에 통곡과 신음 소리가 가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인 거주지 중심으로 도시시설을 집중 투자하여 일본인에게만 유리한 일본인 중심의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1914). 인천지역에서는 자연 제물포를 중심으로 한 원인천사회가 그 초점이 되었다. 앞서 경기도 인천군에서 인천부로(1910) 바뀌었던 원인천사회는 이 개편에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으로 양분되었다.

인천부는 일본인 시가지를 중심으로 부역(府域)이 크게 축소되고, 나머지 농·어촌지역은 부평을 중심으로 신설된 부천군(富川郡)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각국공동조계와 청국전관조계도 모두 철폐되고, 부의 하부 행정조직도 모두 일본식[정(町), 정목(丁目)]으로 바뀌었다. 인천부는 완전히 일본인 도시로 변하였고, 전통적인 생활권역과 공동체 질서는 파괴·약화되었다.

본 저작물은 '인천광역시청'에서 '2013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개항이후 인천(작성자:문화재과)'을 이용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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